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드먼드 켐퍼 (문단 편집) === 출소 이후 === 켐퍼는 1969년 12월 18일, 자신의 21번째 생일날에 가석방되어 세상에 나왔다. 이때 전과는 말소되었으나 문제는 그에게 살 집이 없었던 것이다. 선택이라고는 켐퍼가 싫어하는 어머니와 사는 것인데 아타스카데로의 의사들은 그가 어머니와 또다시 함께 있게 된다면 양쪽 모두에게 독이 될 뿐이라며, 켐퍼에게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켐퍼는 집을 구할 돈이 없다보니 본인도 싫었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결국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로 어머니와 약속하며 함께 살게 되었다. 출소 이후 켐퍼는 경찰 보조 일을 하고 싶어했지만 너무 큰 키와 체중(206cm, 113kg)때문에 거부되었다.[* 체구가 크다는 것은 적당히 돌려말했을 가능성이 크고, 켐퍼가 경찰 일을 하지 못한 이유는 '''내부기록에 존속살인 이력이 남아'''있어서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찰관을 만나 경찰관들과 친하게 지냈다. 어머니 클라넬은 3번째 이혼 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시스템|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사무보조 자리를 얻었는데, 이때 켐퍼도 그 대학의 커뮤니티 칼리지에 잠깐동안 참여했다. 켐퍼는 여기서 교통과 일자리를 얻어서 성실히 일하며 이때까지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살았다. 그러나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던 중 맞은편 트럭에 의한 교통사고를 당해 왼팔을 다치고 만다. 1970년대 당싯돈으로 15,000달러라는 꽤 큰 보상금을[* 현재의 가치로 9만 달러에 달하는 거금이다.] 받았지만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게다가 집에 머물던 켐퍼는 어머니의 알콜중독과 폭언으로[* 켐퍼가 집에 있는것과 전과를 들추어냈다. 이때문에 켐퍼는 어머니를 살해한 것을 경찰이 추궁했을때 "수십년 동안 나한테 불평을 늘어놓고 고함을 지르고 명령을 해댔으니 그렇게 당해도 싸죠"라고 답변했다.] 인한 불화가 심했고 술에 취해 돌아온 어머니의 폭언을 듣고는 분노가 폭발해 자신이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살인을 저지르고자 범행을 계획하고 실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